오라클, 퓨쳐워커
아마추어 돌팔이 점쟁이로서, 저는 3부작의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오라클이라는 인물에 특히 관심이 갔습니다. 어떤 방식을 통해 작동되는 건지, 그게 과연 과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를 떠나, 어쨋든 영화 내에서 오라클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운명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각 편마다 건드리는 '예언'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다릅니다.
1편의 네오와 오라클의 대화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예언에 관한 이야기'는. '꽃병은 괜찮다' 이지요. 네오는 '무슨 꽃병?' 하며 두리번대다 꽃병을 깨뜨리고 맙니다. 오라클이 꽃병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네오가 꽃병을 깼을까요?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예언이라는 행위 자체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언은 예언이고 미래는 미래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예언을 하고 예언을 듣는 과정자체가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편의 네오와 오라클의 대화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사탕 이야기' 입니다. 오라클이 '사탕을 먹어라'고 하고 네오는 '내가 사탕을 받을 걸 알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선택을 할수가 있느냐' 고 묻지요. 세상의 일은 이미 정해진 것이고 우리는 그 정해진 길을 따라갈 뿐인 걸까요. 사탕을 받고 안받고 조차 우리의 선택의 손에서 벗어난 것일까요. 오라클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택을 했으며, 중요한 것은 선택에 대해 이해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 논리는 뉴에이지 적인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이야기가 길어지겠군요)
3편에 나오는 오라클을 보곤 '예언'관련 테마중 퓨쳐워커가 떠올랐습니다. 퓨처워커는 드래곤라자로 유명한 이영도씨의 판타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이 사람은 오라클 처럼 틀리는 적이 없습니다. 한가지 가정을 들어봅시다. 어느날 이 퓨쳐워커가 미래를 보다가 1개월 후 바다한가운데에서 상어에게 잡아먹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합시다. 30년동안 바다라곤 구경도 못해본 이 사람에게 이 예언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이 사람은 죽지 않기 위해 바다에 가지 않으면 되는게 아닐까요? 바다에 가지 않아서 죽지 않았다면, 그가 본 미래란 것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퓨처워커의 아이러니는 이런 데에 있습니다. 포츈텔러가 아니라 future walker 라고 할때는 주어진 미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자신이 본 미래의 모습을 믿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요. 위의 가정과 같은 상황에서 퓨처워커는 일부러 1개월 후 바다 한가운데에 있기 위해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3편의 오라클은 마치 (메로빈지언은 fortune teller라고 칭하지만) 퓨쳐워커의 모습이었습니다. 스미스는 갑작스레 쿠키바구니를 던져버리고 '내가 이럴줄 알고 여기에 놔둔것이냐?' 고 묻지요. 오라클에 덮어쓰기 하면서 '왜 내가 올줄 알면서 피하지 않았지?' 라고 묻지요.
미래를 예언하는 자들의 미래에 대한 의견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미래를 예언하기 때문에 '미래란 알수없다'는 의견은 없습니다. 1 모든 미래는 바꿀 수 있다 2 미래의 대부분은 바꿀수 있지만 일부분은 바꿀 수 없다 3 미래의 일부분은 바꿀 수 있지만 대부분은 바꿀수 없다 4 미래는 바꿀 수 없다.
그러고보면, 정해진 변수와 정확한 방정식을 중요시하는 아키텍트의 대칭점으로 불확실성과 오류들을 상징한다고 자부하는 오라클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태도나 생각은 무척 경직되어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라클의 태도는 위의 4가지 중 '4'번에 해당하는 것이거든요. 1편에서 그녀는 왜 꽃병에 대해 이야기 했을까요. 단지 네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2편에서 그녀가 하는 '우리는 이미 선택을 했다' 는 말, 3편에서 오라클이 몸소 실천해 보여주는 자신이 보여준 미래를 실천해나가는 모습.
이런 모습을 종합해볼때 오라클은 퓨처워커이며, 자신이 본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그것에 대한 이해도 포함해서) 자신이 본 미래를 이루어나가려는 의지가 대단한 인물인 것입니다.
